"동일한 풍경을 동일한 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길은 풍경을 기록하고 보존한다. 길은 풍경을 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홈 파인 레코드판이 소리를 저장하듯 말이다. 그래서 사회학자, 인류학자들은 이렇게 오래된 길들을 ’그림일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2년 전 작고한 건축계의 이단아 정기용(1945~2011)의 글이다. 땅과 길, 자연에 천착했던 그의 ’그림일기’가 공개된다.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다. 전시 타이틀도 ’그림일기:정기용 건축 아카이브’다. 전시에서는 ’무주프로젝트’를 비롯한 그의 대표작들이 어떤 구상과 과정을 거쳐 완성됐는지를 차분하게 따라간다.

그에게 그림일기는 드로잉이자 글이다. 그는 일관되게 공간 그 자체보다 사람을 중시했다. 화려함과 웅장함보다는 소박함과 인간미를 강조했다. 정기용은 마을에 목욕탕이 필요하다는 주민의 말에 아예 마을회관을 목욕탕으로 만들어버리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와 어린이 도서관인 ’기적의 도서관’을 설계한 일로 유명하다.

특히 ’정기용의 렉처 룸’이라는 공간에서는 영화감독 정재은이 촬영한 정기용의 생전 강연 영상을 상영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관에 건축 전문 공간을 신설하면서 시작한 첫 건축전이다. 10월에는 재일 건축가 고 이타미 준(유동룡ㆍ1937~2011) 회고전이 열린다. 전시는 9월 22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