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차 핵실험을 앞두고 환구시보(環球時報) 등 관영 매체를 통해 석유·식량 원조 중단과 북·중 관계 파탄까지 거론하며 북한을 압박했던 중국이 막상 핵실험 후에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2일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를 초치해 항의하고, 12~13일 존 케리 미 국무장관, 김성환 외교부장관과 잇달아 전화회담을 가졌다. 중국 외교부도 대북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외견상 분주한 것과 달리 내용은 빈약했다.

양 부장은 한·미 양국 외교장관과 가진 통화에서 대북 조치보다 냉정과 자제를 촉구하는 데 상당 시간을 할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재룡 대사를 초치했을 때도 핵실험을 강행한 데 대한 책임을 묻는 언급은 없었다. 대북 비난성명도 2009년 2차 핵실험 당시 성명에서 글자 몇 자만 고쳐서 냈다.

전직 외교관들은 북한 달래기에 나섰다. 외교관 출신의 궈총리(郭崇立) 국제연구기금회 부이사장은 지난 12일 홍콩 대공보(大公報) 좌담회에서 "핵실험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북한의 모든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흥망성쇠가 중국의 안보이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장팅옌(張庭延) 초대 주한중국대사도 "북핵에 대해 견지해야 할 원칙은 1번이 한반도 안정, 2번이 중조(中朝·중국과 북한) 우의이며, 여기에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더할 수 있다"고 했다. 대북 강경 기조로 일관했던 환구시보도 13일 "중국은 핵실험을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만 썼다.

중국 내 전문가들도 대북 강경 조치에 대해 말을 아꼈다. 진찬룽(金燦榮)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남북 대화가 어려워졌고, 미·중 관계도 악화되는 등 중국에 부정적 영향이 크다"면서도 대북 조치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중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시진핑 생각을 움직일 시간이 촉박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움직일 수 있을까.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에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대북제재가 예고되는 가운데 시진핑이 '키맨'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엔이 대북제재를 결정한다고 하더라도 중국의 제재 동참여부가 제재의 실효성을 결정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13일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북한이 12일 핵실험을 한데 이어 추가로 핵실험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며 "효과적인 대북제재를 위해서는 중국을 움직이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통일부 전직 고위관리도 "유엔의 제재결의까지 최소 1~2주 이상 걸리고, 실제 행동에 들어가는 것까지 고려하면 이번 사태는 이명박 대통령 보다는 박 당선인의 과제"라며 "박 당선인의 외교력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추가 도발을 막고, 비핵화를 진전시키는 경로에서 중국은 가장 중요한 변수로 꼽히고 있다. 북한의 대외자금을 동결한 '방코델타아시아(BDA)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대북제재가 무위로 돌아간 배경에 중국의 식량·에너지 지원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현금과 물자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오가는 북중국경도 제재를 무력화하는 요인이다.

중국이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이상 유엔 안보리 결의도 선언적 의미를 벗어나기 힘들다는 의미다.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느냐 마느냐가 대북제재 효과를 결정하는 가늠자인 셈이다.

2005년 시진핑과 첫 만남 = 일단 박 당선인과 시진핑 총서기 사이의 관계는 역대 어느 정권의 한중관계 보다 더 돈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당선인은 당대표를 맡고 있던 2005년 당시 저장성 당서기 자격으로 방한한 시진핑 총서기와 만난 인연이 있다. 그는 2007년 출간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 등을 포함해 여러 곳에서 중국과의 인연과 관계를 강조한 바 있다.

박 당선인이 또 대선 승리 이후 첫 특사 파견국가로 중국을 선택했다. 김무성 전 의원이 특사단장을 맡아 박 당선인의 친서를 시진핑 총서기에게 직접 전달했다. 특사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한반도의 비핵화와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의 필수요건이라는 점은 중국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남북이 대화를 통해 자주평화통일을 추진하고 실현하길 희망하며, 중국은 이를 적극 지지할 예정"이라고 화답했다.

문제는 중국의 이해관계가 한반도 비핵화와 반드시 일치하느냐 여부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에 거의 유일하게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이 그동안 북한을 레버리지(지렛대)로 이용해 왔다고 보고 있다.

북한의 핵무장은 부담이지만 비핵화 보다는 현상유지가 대미관계는 물론 동북아 패권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박 당선인이 시진핑 총서기에게 '비핵화가 더 큰 이익'이라는 점을 설득하는 한편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내야 북핵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는 뜻이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시험대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시동도 걸어보지 못하고 좌초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내놓고 있다.

박 당선인측 관계자는 "신뢰 프로세스는 북한의 도발까지 염두에 두고 시작(개념화)한 것"이라며 "시작도 해보기 전에 바뀌느냐가 (핵심이) 아니라 얼마나 고도의 수준까지 실천될 수 있느냐를 보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