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여당이 3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증액하면서 이번 추경의 가장 큰 목적인 코로나19 대응과 상관없는 '지역구 예산 나눠 먹기' 구태가 재연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일 매일경제가 3차 추경 상임위원회별 심사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여당 의원들은 4·15 총선에서 여당을 전폭 지지한 호남 지역에서 사업 예산에 대한 증액을 적극 추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을)은 전남 여수산단 정밀화학·금속소재·부품 산업의 제조 장비 기술을 고도화해야 한다며 30억원 증액을 요구했다. 그는 전남 영암 대불국가산업단지 고압 송전선로를 땅속에 묻는 사업을 위해 20억원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사실상 전남 지역 사업 챙기기에 나선 것이다.

윤준병 의원(전북 정읍고창)과 위성곤 의원(제주 서귀포)은 전북 군산시 인근 해역에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조성을 추진하기 위해 예산을 100억원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립 초·중·고등학교 옥상 등 유휴 용지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는 게 핵심인 '학교 태양광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42억3200만원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반영됐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인 신재생 에너지 사업과 관련된 것들이다.

인천 계양갑을 지역구로 둔 유동수 의원은 인천시 역점 사업인 '바이오 원·부자재 국산화 지원센터 설립'을 위해 20억원 증액을 요구했다. 유 의원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소재·부품 자원순환 기술혁신센터'를 구축해야 한다며 200억원을 늘려 달라고도 했다. 강원도지사 출신인 이광재 의원(강원 원주갑) 역시 국내 석탄화력발전소의 석탄재를 활용해 희토류 관련 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에 30억원을 반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내 석탄화력발전소는 대부분 강원도 지역에 몰려 있다.

한편 국회 보이콧을 선언한 야당 측 불참으로 예산안조정소위원회가 여당과 정부 참여만으로 이뤄져 국회 본연의 현미경 검증 기능은 사라지고 예산 심의가 사실상 '당정 협의'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3차 추경에 대해 세부 사항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예산조정소위는 이날 여당 의원들과 정부 부처 관계자들만 참석한 채 진행됐다.

통상 예산조정소위는 여당이 야당과 기획재정부를 상대로 1대2로 싸움을 벌이는 곳이다. 앞선 추경 편성 과정에서도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확장 재정을 관철하려는 여당, 이를 견제하기 위해 삭감을 주장하는 야당과 재정건전성을 지키고자 하는 기재부가 부딪쳤다.

그러나 야당 측 불참으로 여당은 기재부만 상대하면 되는 상황이 됐다. 게다가 당초 정부가 제출한 3차 추경안은 여당 요구가 충분히 반영된 예산이라 이견도 크지 않은 분위기다.

민주당 관계자는 "3차 추경은 기재부와 사전에 충분한 협의를 거친 결과"라며 "상당히 만족스러운 수준"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예결위가 가진 '심사' 기능은 사라지고 당정 간 '협의'의 장이 돼버렸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민주당 예결위 관계자는 "야당이 발표한 비판을 보니 아무런 내용도 근거도 없다. 추경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것 같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비록 야당이 불참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지적을 한다면 충분히 질의를 통해 반영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교육위원회 차원에서 신설을 요구한 1951억원가량의 대학등록금 간접지원 예산은 쟁점이 될 전망이다. 전날에도 박홍근 간사를 포함해 다수 예결위원이 대학 측 자구 노력을 전제로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3차 추경에 안 담기더라도 예비비로 지원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이날 예산조정소위는 법무부,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10개 부처에 대한 감액 심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외국 진출 기업의 국내 유턴을 지원하는 '리쇼어링' 예산을 두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의원들 간에 이견이 표출되기도 했다. 전남 목포를 지역구로 둔 김원이 의원은 "그렇지 않아도 지방에 투자를 안 하고 있는 상황인데 수도권에 얼마라도 현금 지원이 이뤄지는 것은 안 좋은 신호"라고 지적했다. 반면 경기 양주가 지역구인 정성호 의원은 "균형 발전보다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 중요하다. 전체 파이를 키워서 지방에 돈을 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