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가 한국 영화로는 일곱 번째로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2004년 '실미도'를 시작으로 한국 영화는 거의 한 해 걸러 1000만 관객 영화를 배출했다. 문학·출판에서도 '1000만부'를 달성한 작가는 적지 않다.

24일 새 책 '고타마'를 출간한 무협소설 작가 이우혁은 대표작인 '퇴마록' 시리즈(전 19권) 등으로 1000만부를 팔았고, 최근 신간 '제3의 인류'를 펴낸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Werber)도 '개미' 이후 한국에서 누적 1000만부를 돌파했다. 국내 출판계에서는 3000만부의 이문열('삼국지'가 1800만부)을 필두로 조정래('태백산맥' 등 1500만부), '밤의 이문열'이라 불리는 이원호('강안 남자' 등 1000만부)와 김진명('고구려'등 1500만부) 등이 1000만부 클럽에 가입한 작가로 보고 있다. 또 '해리포터'의 조앤 롤링(Rowling) 역시 국내에서만 1500만부를 훌쩍 넘겼다.

'1000만부 작가' '1000만 영화'는 우리 국민의 '문화 소비 능력'이 상당한 지점에 도달했다는 일종의 상징 지표로 평가된다.

문제는 이런 '1등의 독주'의 이면. 팔리는 책만 읽고 남들 보는 영화만 보는 추세가 심화하면서 문화 생태계의 파괴와 취향의 양극화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원인은 무엇일까. 원론적으로는 창작자의 책임이지만 업계에서는 유통 환경의 변화를 더 심각하게 꼽는다. 트위터·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가 유명 작가와 화제성을 지닌 책 판매의 급가속 페달을 밟아주는 반면 인터넷 서점 때문에 신인 작가가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점점 더 줄고 있다는 것이다. 출판평론가인 한양대 표정훈 교수는 "출판사들이 신간을 내겠다는 의욕이 저하되고, 기존 잘나가는 베스트셀러를 할인이나 1+1등으로 팔려는 이벤트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출판의 종(種)적 다양성이 줄고 출판사의 다양성도 줄고 있다"고 우려했다.

'작은 영화'가 관객을 만날 기회가 적은 것은 영화도 마찬가지다. 화려한 1000만 관객 시대의 그늘에서 인디·독립영화들은 1만명만 들어도 '기적'이라고 자조하는 상황이다. 개봉 후에 받는 외면이야 할 수 없지만 초대형 블록버스터나 할리우드 영화들이 개봉관을 장악한 탓에 아예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항변이다. 김기덕 감독은 '피에타'로 베네치아 황금사자상을 받은 뒤 국내 기자회견에서 "한두 영화가 멀티플렉스 극장을 독점하고 있다. 동시대에 사는 영화인들이 만든 작은 영화들이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하고 평가도 받기 전에 사장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이 모든 양극화와 빈익빈 부익부가 독자와 관객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온다는 점이다. 문화의 편식에 대한 우려다.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김미현 교수는 "독자들은 자신의 선택이라고 믿겠지만 결국 강요된 책과 강요된 영화만 보게 되는 것"이라면서 "다품종 소량 생산이 아니라 소품종 대량 생산으로 취향의 규격화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