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연구개발(R&D) 신설법인 추진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한국지엠(GM)을 상대로 주주총회 개최를 금지시켜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11일 서울 여의도 산은 본점에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갖고 "아직 구체적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한국지엠의 신설법인 설립) 반대를 전제한 것은 아니지만 일방적으로 추진한다면 기본협약의 정신에 위반되고 잠재적 위험이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지난 7~8월 한국지엠 이사회에 구체적 안건은 아니지만 신설법인을 만들 수 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고 한다"며 "한국지엠에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밝히라는고 요청했지만 아직 확답을 못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지엠의 사외이사 한 분이 회사에 신설법인의 구체적 내용과 기대효과, 목적을 이사회에 올렸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구체적 내용이 밝혀져야 그에 따라서 이것이 어떤 것인지 평가할 수 있고 산은이 반대할지 찬성하고 도와줄 것인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도 기다리는 상태"라고 전했다.

아직 찬반 입장을 결정한 것은 아니나 다만 당초 산은과 한국지엠간 경영정상화 합의서에는 없었던 내용인 만큼 구체적인 내용을 듣기 전까지는 신설법인 추진을 막아야 하기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는 설명이다.

앞서 지난 7월 배리 앵글 제너럴모터스(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한국지엠에 대한 5000만 달러 규모의 신규투자와 수출물량 확대, 엔지니어 100명 추가 채용 등의 내용과 함께 신설법인 설립 계획을 공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노조는 사측이 또 다른 구조조정을 실시하기 위한 꼼수라고 반발하고 있다. 현재의 단일 법인을 생산공장과 R&D 기능 등 2개 법인으로 분리해 제 2의 공장폐쇄나 매각을 진행할 수 있고 직원들에 대한 구조조정 우려도 있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공장 철수도 재추진할 수 있다고 노조는 보고 있다.

지난해 말 모로코 사피 복합화력발전소 부실 문제가 불거지며 호반건설과의 '딜'이 깨진 대우건설 재매각과 관련해서는 "조급히 매각을 추진하지 않겠다"며 "2~3년간 재정비해 정상화시키고 경쟁력을 높인 다음에 매각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대우건설 매각 실패 이후에 당초 예측보다 훨씬 빨리 온 큰 변화가 남북경협 문제다. 남북경협이 가시회되면 대우건설의 유용성이 굉장히 커지기 때문에 3년 뒤에는 (재매각한다면) 실패한 가격의 2배 정도는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주가가 현재 5600원 수준이 아니라 1만원이 될 가능성도 있어서 서둘러 팔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회장은 "다만 이 과정에서 대우건설의 경쟁력을 어떻게 높이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면서 구조조정 기업 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구조조정 기업 직원들의 모럴 해저드가 적지 않다. 항간에서는 산은이 구조조정 기업을 팔기 싫어서 갖고 있으려 한다는 얘기를 하지만 정반대"라며 "지난 1년간 느낀 것은 어떤 기업도 산은 밑에 들어오면 나가기 싫어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대우건설도 노조에서 조직적으로 매각에 반대하는 굉장한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제일 역점을 두는 것은 그런 기업들이 독립심과 주인의식 갖도록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를 많이 고민 중"이라면서 "자주는 못해도 반년에 한 번씩 정도는 전 임직원 상대로 보고를 받으려 한다. 대우건설, 대우조선에 가서 임직원들한테 보고를 받았고 현대상선은 정상화 방안을 보고 받으며 질타도 하고 지원 방안도 함께 강구했다"고 설명했다.

남북경협과 관련해서는 최근 중국, 러시아 등의 북한 접경지역을 다녀왔다고 소개했다.

이 회장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서 중국 선양과 단둥 등을 가서 분위기를 조금 보고 왔다"며 "앞으로 발전의 여지와 잠재력이 많이 있을 것 같지만 초기 위험도가 워낙 커서 한두 개 금융기관이 선점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경협은 크고도 넓고도 위험하기 때문에 한두 개 금융기관이 들어가서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그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며 "산은이든 수출입은행이든 시중은행이든 일반기업이든 심지어는 외국금융기관이나 국제금융기구까지 모두 합심해 큰 그림을 그리면서 경협을 해야 효과도 있고 리스크도 분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은이 안고 있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의 매각 작업이 지지부진하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는 "지난 10년간 구조조정을 하나도 하지 않은 것을 제 임기중에 할 수 있는 만큼 할 각오"라며 "그래야 우리 경제의 위험 요인을 빨리 제거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부산 같은 곳을 가봐라.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역경제가 초토화돼 앞으로도, 뒤로도 못가고 있다. 이렇게 정체돼 있는 것을 이제는 싫든 좋든 물꼬를 터줘야 한다"며 "감히 얘기하건데 산은은 이 (부실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강요에 의해 떠맡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력은 다한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