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 피살 사건을 둘러싸고 북한과 말레이시아 정부간 외교갈등이 심화되는 모양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20일(현지시간) 강철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를 초치해 "(김정남) 사인 규명조사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말레이시아 조치에 불만을 밝혀온 북한을 겨냥한 강수로 보인다. 이에 강 대사는 이를 반박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 대사는 이날 오후 3시쯤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한 북한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말레이시아 정부는 우리와 아무런 토의도 없이 언론에 이번 사건에 대해 공개했다"면서 말레이시아 정부를 향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특히 전날 말레이시아 경찰이 진행한 수사 중간발표 기자회견에 대해 '옳지 않은 행동'이라며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또한 피살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명백한 증거와 사망원인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우리는 의심을 더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외교갈등은 이같은 강 대사의 긴급 기자회견 이후 재차 격화됐다. 말레이시아 총리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김정남 피살 사건의 수사 결과를 '절대 확신'한다며 강 대사의 회견을 직접적으로 반박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지난 1973년 6월 외교관계 수립 이후 줄곧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말레이시아가 북한에 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일각에서는 말레이시아 정부가 북한과의 무비자 협정을 재검토할 가능성도 언급된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말레이시아 내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아울러 김정남의 피살이 북한 당국의 소행으로 드러난다면 말레이시아 뿐만 아니라 북한이 공들여 온 '외교행보' 역시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초부터 연이은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도발로 유엔 안보리 제재를 잇달아 받으며 국제적 고립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외교적 활로를 꾸준히 모색해 왔다.

이같은 활로가 단절됨은 물론, 김정은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와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등 북한이 상당한 수준의 대외 압박에 몰릴 것으로 전망되는 것이다.

한편 말레이시아 경찰은 전날(19일) 기자회견에서, 앞서 체포한 리정철(47) 외에도 범행에 가담한 북한 국적 용의자가 4명(리지현, 홍성학, 오종길, 리재남) 더 있다고 밝혔다.

또한 북한 측이 김정남 시신 인도를 요청한 가운데 경찰은 "가족과 친지의 신원 확인이 우선"이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전날 기자회견에서 밝혀지지 않은 김정남의 사인은 이르면 오는 22일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