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27일 국정 역사교과서 전면적용 시기를 2018년 3월로 1년 연기하고 국·검정 혼용체제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부가 책임을 떠넘겨 혼란만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더 큰 문제는 교육부가 적용시기를 1년 연기하고 국·검정 혼용으로 가겠다고 하면서도 편찬기준은 그대로 가겠다고 밝힌 데 있다. 편찬기준을 바꾸지 않으면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아니라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한 표현이 그대로 남는다.

◇"국·검정 혼용은 학교에 책임 떠넘기기…현장 혼란만 부추겨"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이날 대국민담화에서 "다양한 의견을 토대로 학교 현장에서 혼란 없이 안정적으로 역사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

국정 역사교과서만 사용한다는 의미의 국정화정책은 철회했다. 반면 국·검정 혼용은 교육부가 개발한 국정교과서는 그대로 사용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7년에 연구학교를 지정해 국정교과서를 보급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국정교과서 폐기를 위한 교육·시민사회·정치 비상대책회의(비상대책회의)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부 발표는 사실상 국정 역사교과서를 강행 추진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비판했다. 비상대책회의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철회를 요구하는 야 3당과 485개 시민단체, 13개 시·도 교육감이 참여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해온 이들은 교육부 발표로 학교현장의 혼란이 가중됐다고 지적한다. 교육부는 2018년 국·검정 혼용에 앞서 내년에 국정교과서를 사용하는 연구학교를 지정할 계획이다. 나머지 학교는 기존 검정교과서를 그대로 사용한다.

같은 학년인데 서로 다른 교육과정을 배우게 된다. 국정 역사교과서는 2015개정 교육과정에 따라 제작한 교과서다. 기존 검정교과서는 2009교육과정에 따라 만들었다. 교육과정 틀 자체가 다르다.

연구학교 선정이나 국·검정 교과서 선택을 두고 학교현장에서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도 크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역사교사 1372명이 '국정교과서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불복종 선언을 했"며 "연구학교 지정이나 국·검정 교과서 선택 과정에서 교장과 교사가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1년 유예라면 사실상 철회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교육부 발표는 눈치보기를 하면서 국정교과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무책임하게 책임을 학교에 떠넘기면서 현장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육과정·편찬기준 그대로…건국절 수용 논란 여전히 남아

또 다른 문제도 남는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크게 세 단계로 진행됐다. 먼저 역사과목을 검정에서 국정으로 바꾸었다. 다른 과목과 달리 적용시기를 2017년 3월로 앞당겼다. 마지막으로 편찬기준을 바꾸었다.

2015개정 교육과정을 역사교과에 적용하는 시기를 1년 연기하고, 국정에서 국·검정 혼용으로 바꾼다고 해도 편찬기준은 그대로 남는다. 이날 브리핑에서 교육부 관계자는 "편찬기준은 지금 현재 편찬기준 그대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크게 논란이 됐던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수립' 표현은 그대로 교과서에 남는다는 말이다. 교육부가 만든 국정교과서뿐 아니다. 앞으로 개발하게 될 검정교과서도 이 편찬기준에 맞춰 교과서를 제작해야 한다.

검정교과서는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표현했다. 국정교과서는 이를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꾸었다.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1948년 건국절' 주장을 수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보면 임시정부의 법통을 무시하고 친일 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고 진보 역사학계는 비판한다.

교육부가 지난달 28일 현장검토본을 전용 웹사이트에 공개한 후 가장 많은 의견이 접수된 것도 '건국절 주장이 반영된 내용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3807건 중 1590건이나 차지했다. 특히 '대한민국 수립'을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의견이 1157건이나 됐다.

박정희정권을 미화하고 경제성장을 강조한다는 논란도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국정교과서 편찬기준은 4·19혁명 이후를 기술할 때 '민주화 운동은 경제·사회 발전 과정에서 국민들의 자각으로 비롯되었음을 유의한다'라고 편찬 유의점을 제시했다. 검정교과서 때와 달리 '경제·사회 발전 과정에서'가 추가됐다.

비상대책회의는 "2015개정 교육과정은 이미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바꾸어 놓은 개악"이라며 "이 교육과정으로 검정교과서를 다시 집필하라는 것은 학계와 교육계 의견을 무시한 것으로, 결국 청와대의 뜻과 뉴라이트 계열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회장은 "국·검정 혼용으로 가도 현재 교육과정과 편찬기준을 그대로 사용하면 현장에서 또 다시 논란과 갈등만 커지게 될 것"이라며 "교육과정과 편찬기준도 함께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교육과정을 수정고시하지 않겠다는 것은 국정교과서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호"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