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주말 5차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난 10대 청소년부터 70대 노년층 참가자까지, 그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저변에는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한다'는 절망감이 깔려 있었다.

청와대 지척에서 벌어진 수차례에 걸친 대규모 하야 촉구 집회를 목격하고도 검찰 수사를 거부하는 등 '마이웨이'를 고집하는 박 대통령의 독단적 행보에 실망감이 증폭된 것이다.

인천 양촌중 1학년 친구 사이라는 곽라영, 김민정(13)양은 "첫 촛불집회부터 나왔다"며 "(국민들이 이렇게 요구하는데) 왜 하야를 안 하느냐. 고집이 너무 세서 그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박모(18)군은 "수능 끝난 후부터 집회에 계속 나왔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원래 안 좋아하기도 했지만 정말 답답하다. 탄핵을 당해야 내려올 모양"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동덕여대에 다니는 황정아(20)씨는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데도 귀 덮고 눈 감고 있다"면서 "대통령이 다시 사과를 한다고 해도 이젠 늦은 것 같다. 불만을 잠시만 무마해보자는 식의 사탕발림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씨와 같이 나온 친구 김다혜(19·여)씨는 "사과는 상대방이 받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며 "우린 이 날씨에도 이러고 있는데 대통령은 어디서 도대체 뭘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인천 서구에서 온 정모(37)씨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여기지 않고 오로지 자기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안다"고 개탄했다.

경기도 분당에서 온 이유진(45)씨는 "박 대통령은 현 시대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이 자기 아버지가 살았던, 온갖 불법이 판치던 시대를 재현하려고 한다"면서 "이 시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어울리지도 않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고 역설했다.

종전 박 대통령의 확고한 지지기반으로 여겨졌던 노년층의 분노도 젊은층에 뒤지지 않았다.

미국 산호세에서 왔다는 김영진(71)씨는 "나도 박근혜 대통령을 찍었는데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박 대통령이 중심 없이 비선실세에 휘둘리는 것을 보니 우리 국민이 불쌍하다"며 "조금이나마 애국심이 있다면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가적인 손실도 크고 전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됐다. 모두 합심해서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의 아내인 문성숙(66)씨는 "박 대통령은 지금 자기 정신이 아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국민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이다. 빨리 하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남 봉화군 농민회 부회장 전미선(71)씨는 "시골로 데려가서 버릇을 고쳐놔야겠다"며 "산골에서도 박 대통령 소식을 접하고 화가 나서 잠이 안 온다"고 토로했다.

최성영(55) 수녀(예수 까리따스 수녀회)는 "지금 정권은 너무나 비정상이다. 이렇게라도 국민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15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4시 창성동 정부서울청사 별관 앞과 신교동로터리, 새마을금고 광화문지점, 삼청로 세움아트스페이스 앞 등 4곳에서 사전 집회와 '청와대 인간띠 잇기' 행진을 벌였다.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집회에는 서울 150만명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200만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였던 지난 12일 3차 집회 때 100만명(경찰 추산 26만명)을 크게 웃돈다.

법원의 허용으로 청와대에서 불과 200m 거리인 청운동 주민센터 앞까지 집회와 행진도 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