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패배는 이세돌이 당한 것이지, 인간이 당한 게 아니다."

이세돌 9단은 인간을 대표해 인공지능(AI) 알파고와 대국을 펼치고 있다. 이런 배경은 이 9단에게 큰 압박과 부담이 됐다. 앞선 3번의 대국에서 모두 패했던 큰 이유다. 하지만 남은 두 번의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은 이런 심적인 부담을 더 이상 갖지 않아도 된다.

이세돌 9단은 12일 서울 종로구의 포시즌스 호텔 특별대국장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5번기 제3국에서 176수 만에 돌을 거뒀다. 3연속 불계패로 이세돌 9단은 이번 대회의 패배가 확정됐다.

지난 1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이 확정된 이후 전세계적인 시선이 모였다. 그동안 인간을 상대로 체스와 퀴즈에서 승리를 거뒀던 AI가 그보다 더 복잡하고 경우의 수가 많은 바둑에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그 상대가 10년 동안 바둑계를 주름잡은 이세돌 9단이라는 점은 이목을 더욱 집중시켰다.

한국은 물론이고 바둑 강국인 중국, 일본을 비롯해 바둑이 아직은 생소한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주목했다. 실제로 이번 대국을 위해서 각국 250여 명의 취재진이 서울에 모여들었다. 뜨거운 관심이다.

하지만 이런 전 세계의 집중 역시 이세돌 9단에게 부담과 압박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자신의 승리를 위해 수를 생각하고 돌을 두었던 이세돌 9단은 이번 대국만큼은 '인간의 승리'를 위해 이를 행해야 했다.

긴장감은 평소보다 못한 경기력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이세돌 9단은 제1국에서는 186수 만에, 2국에서는 211수 만에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0대2로 제3국을 맞이한 이세돌 9단은 대국초반부터 공격적으로 임하면서 승리를 노렸다. 패배가 기운 상황에서는 자신의 '체면을 던지는 수'를 두기도 했다. 하변에 115번째로 둔 돌인데, 이날 현장 해설을 맡은 이현욱 8단은 "얼마나 이기고 싶은 지 느낄 수 있는 수"라면서 "프로기사들끼리는 절대 두지 않는다.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실제로 이세돌은 이 돌을 놓고 혼자 괴로워하고 창피해했다.

쉽게 설명하면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수였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상대가 실수해주길 바라던 수'에 가깝다는 것이 바둑인들의 설명이다.

인간을 대표한다는 부담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계산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알파고의 실수를 바라면서까지 승리를 갈구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던 것인데, 그만큼 간절했다는 방증이다.

이처럼 자존심까지 던지면서 승리를 노렸던 이세돌 9단은 결국 176수 만에 기권을 선언했다. 대국 후 이세돌 9단은 가장 먼저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와 내용을 보여드려 죄송하다"고 입을 열었다. 그동안 건방지고 오만하다는 오해를 살 정도로 늘 당당했던 이세돌 9단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어서 "여러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과 같은 심한 압박과 부담은 없었다. 그것을 이겨내기에는 내 능력이 부족했다"면서 "이번 대국의 패배는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현욱 8단은 "이세돌 9단은 지금까지 인간을 대표해 AI와 겨룬다는 부담이 상당히 컸다. 이야기를 해보니 평소의 0대2와 알파고와의 0대2는 무게감이 다르다고 하더라. 그만큼 인간을 대표해 대국을 한 것에 대한 압박이 심했다"고 밝혔다.

인간을 대표한 이세돌 9단의 패배는 결정됐다. 하지만 아직 두 번의 대국이 남았다.

이세돌 9단은 "인간에게 심리적인 부분이 중요하다. 이제 그런 부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제4, 5국을 지켜봐 달라"면서 남은 경기에서 선전을 다짐했다. 인간 대표라는 부담감을 내려놓을 이세돌 9단은 13일 오후 1시 알파고를 상대로 자존심 회복에 나선다.

dyk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