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 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일본 정부 차원의 '사죄'는 일본 총리가 사죄한다는 뜻을 강조해 아베 내각의 역대 의견 표명 가운데서는 가장 진보했다.

그러나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등 위안부 문제에 대한 규정 등은 앞선 고노담화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각 수반인 '총리의 사죄' 강조…직접 표명 안 하고 대독한 셈

기시다 외무상은 "아베 내각 총리대신은 일본국의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경험하고 심신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의 생각을 대신 밝히는 것이라고 언급했으면서 중간에 다시 '내각 총리대신으로서'라고 총리 자격으로 의사를 표명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사죄한 대표적인 담화인 고노(河野)담화는 "정부는 (중략)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며 정부 차원이라는 점을 통상적으로 표현했다.

28일 사죄는 내각 수반의 의지임을 더 강조한 셈이다.

하지만, '총리'를 강조해놓고 결국 기시다 외무상이 이를 대신 전한 셈이라서 표명 방식을 두고 논란도 예상된다.

◇"도의적 책임을 통감"에서 "책임" 언급…"법적 책임" 아니라도 한단계 진전

아시아여성기금 사업의 하나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모리 요시로(森喜朗),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등 역대 총리 이름으로 발송된 서한도 "나는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번…"이라고 언급하며 마찬가지로 총리를 강조하고 있기는 하다.

다만, 당시 편지는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한다고 표현했는데 기시다 외무상이 28일 낭독한 문장은 "책임"이라고 언급한 것이 차이가 있다.

피해자들이 법적인 책임을 요구한 것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표현만 본다면 도의적인 책임보다는 한걸음 나아간 셈이다.

일본 정부가 '법적인 책임'은 끝났다고 하고 있으나 기시다 외무상이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고 한 것은 일반적으로 볼 때 국가 책임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책임'이라는 표현은 고노담화에도 없었던 것이라서 의미가 있다.

◇위안부 강제성·정부관여 등 설명은 고노담화보다 후퇴

그러나 28일 사죄에 포함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설명은 고노담화에 훨씬 못 미친다.

고노담화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반인도적 성격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으며 군뿐만 아니라 정부 측의 관여 사실도 명시했다.

고노 담화는 이에 관해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 (중략) 감언(甘言),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官憲)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고 기술했다.

또 이를 역사의 진실로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겠다는 의지까지 밝혔다.

이에 비해 28일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상당히 간략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이런 점에 비춰본다면 일본 정부의 이번 사죄 표명은 사실 인정이라는 측면에서 고노담화에 필적하기 어렵다.

다만, 아베 총리는 전후 70년 담화에서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며 고노담화를 계승한다는 뜻을 앞서 밝히기는 했다.

하지만, 아베 내각을 향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요구해 온 한국·일본 시민단체는 일본 정부 및 군이 위안소를 설치·관리했고 피해자가 자신의 의사에 반해 성폭력을 겪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을 이행하라고 요구해왔다.

◇기존 아베 총리 발언 중에서는 상당히 진전

28일 발표문을 아베 총리가 그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드러낸 인식과 비교하면 상당히 진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2012년 8월에는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야자와(宮澤) 담화와 고노 담화, 무라야마(村山) 담화 등 모든 담화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13년 10월에는 '정부가 발견한 자료에는 군, 관헌에 의한 강제연행을 직접 보여주는 것과 같은 기술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답변서를 채택했다.

또 10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일본이 국가적으로 성 노예로 삼았다는 근거 없는 중상이 세계에서 이뤄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사죄라는 표현을 그간 매우 꺼려왔으며 전후 70년 담화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대신 "전쟁터의 뒤안에는 명예와 존엄이 크게 손상된 여성들이 있었던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지난 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해 거듭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명해왔다"며 과거형으로 마지못해 사죄를 언급했다.

올해 4월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위안부에 대한 사과할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선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피해자들이 받은 고통을 생각하면 깊은 고통을 느낀다"면서 "아베 내각은 고노 담화를 지지하며 이를 개정할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비록 기시다 외무상이 대신 밝혔지만 이번에 아베 총리의 이름을 내세워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한 것은 아베 내각의 그간 언동을 고려하면 그 나름의 진전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아베 내각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상대적으로 우파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그간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