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서울 은평구 녹번동 다세대주택 공사장 주변에서 주택 8채에 금이 가는 사고가 발생해 주민 19세대 43명이 은평구청과 인근 숙박시설로 대피한 가운데 주민들은 사고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처음 소방당국에 붕괴 사실을 알린 전모(47·여)씨는 "25일부터 집에서 벽이 갈라지는 소리와 '쿵'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전씨의 딸은 "갈라진 틈으로 밖의 불빛을 볼 수 있었다"며 "심한 곳은 벽이 10cm나 갈라졌다"고 설명했다.

전씨는 가스 냄새를 맡고 이날 오전 0시30분쯤 시공업체를 불러 임시조치를 했다. 오전 4시쯤 계속되는 '쿵' 소리와 갈라지는 소리에 잠이 깬 전씨는 가스 냄새가 너무 심해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밖으로 대피했다.

오전 5시쯤 '쿵'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김모(57·여)씨는 "2~3주전부터 문을 열고 닫으면 집이 기울어 내심 불안했다"면서 "구청 건축과에 민원도 제기했지만 아무 조사 없이 계속 땅을 팠다"고 전했다.

김씨는 "졸지에 기거하던 집을 잃었다"면서 "다시 집에 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걱정을 토로했다.

은평구청 측은 이날 오전 11시 브리핑을 통해 "기초공사로 땅을 파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구청은 흙을 파내면서 주변 지하수들이 흘러들어와 지반이 약해졌고 최근 내린 눈이 토압을 상승시켜 흙더미가 무너져 내린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구청은 24일 '건물에 균열이 간다'는 민원을 받고 공사를 중단시켰고 28일 공사 관계자 등을 만날 예정이었다.

구청은 안전조치 차원으로 가스와 상수도를 차단하고 균열된 가구와 인근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은평구청은 구청 5층에 대피 주민들을 위한 장소를 마련했다.

신축현장 옆 건물에 사는 이모(47)씨는 "무리한 공사였다"면서 "평소에도 너무 깊게 지반을 파는 것을 보고 걱정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위험하니까 집 밖으로 나오라고 했는데 연말이고 엄동설한에 갈데가 어디있겠냐"며 "불안해도 집에 들어가야겠다"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여행으로 하루 집을 비웠다는 주민 송모(64·여)씨는 "가보니 이미 집이 다 기울어지고 2층 벽은 무너졌다"고 말했다.

인명피해도 있었다. 이날 오전 11시20분쯤 은평구청 직원 김모(44·여)씨가 현장을 점검하다 담벼락이 무너져 오른쪽 눈 밑과 왼쪽 무릎을 다쳐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은평구청은 오후 3시50분 대책회의를 마치고 주민들에게 구청과 인근에 숙박시설을 마련했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했다.

구청 관계자는 "식사와 숙박비는 건축감리자가 먼저 지급하고 후에 건축주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