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10시30분쯤 크리스마스를 맞은 서울 중구 서울역 앞 광장엔 삼삼오오 노숙인들이 모여들었다.

미세먼지가 걷힌 이날 노숙인들은 하나같이 털모자와 목도리, 패딩점퍼 등으로 온몸을 감싼 모습이었다.

이렇게 서울역에 모이는 노숙인은 어림잡아도 300명이 넘어 보였다.

40년간 노숙생활을 했다는 김영철(60)씨는 "서울역에 오면 여러 단체에서 옷가지와 음식을 많이 주고 환경도 깨끗하다"며 "남대문경찰서 뒤에는 노숙인이 모이는 쪽방촌도 형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래서인지 다른 역사 주변의 노숙인과 달리 서울역 노숙인들은 행색이 남루하지 않은 편"이라고도 했다. 김씨 또한 깔끔하게 세탁된 아웃도어 의류를 겹겹이 껴입고 있었다.

성탄절인 이날 서울역 광장을 비롯, 시내 여러 곳에서는 노숙인과 독거노인등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한 성탄예배와 함께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됐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광장교회의 진요한(50대) 목사는 "서울역교회연합회에서 매일 오전 10시부터 하는 예배를 오늘은 크리스마스 특별예배 형식으로 진행한다"며 "노숙인들에게 내복이나 점퍼, 빵과 과일 같은 선물을 나누어 준다"고 설명했다.

진 목사는 "서울역 주변에 노숙인들을 돕는 교회가 십여 군데 정도 있다"며 "그렇지 않으면 수백 명에 이르는 노숙인들을 누가 돕겠는가"라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 장위동 충만교회에서 광장 한켠에 설치한 천막에선 오전 11시쯤부터 영화 '사랑의 원자탄'을 상영했다. 노숙인 약 20명이 간이의자에 앉아 LCD모니터에서 나오는 영화에 몰입하고 있었다.

개별적으로 노숙인을 돕기 위해 나선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다. 한 부부는 어린아들 세 명을 데리고 김밥 한 박스를 캐리어에 싣고 다니며 노숙인들에게 나눠줬다.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하던 여성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나왔을 뿐"이라며 바삐 걸음을 뗐다.

광장에 설치된 천막에서는 하나같이 '주예수 다 구원하시네'라는 찬송가의 후렴구가 몇 번이고 들려왔지만 구원과 온정의 손길이 미처 닿지 않는 곳도 있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얼마 전부터 노숙을 하기 시작했다는 서길환(54)씨는 자신의 오른뺨을 어루만지며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먼저 와 있던 노숙인들에게 얻어맞는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서씨는 "교회에서 음식을 나눠주는 것은 고맙지만 진짜 도움이라고는 할 수 없다"며 "정부에서 쉼터라도 만들어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했다.

오전 11시 서울 청량리 밥퍼나눔운동본부 앞마당에선 다일공동체(대표 최일도 목사) 주최로 3000여명의 노숙인, 독거노인 등이 모였다.

밥퍼의 도움을 받는 어려운 이웃들이 함께 하는 '거리성탄예배'는 올해로 28년째 이어지고 있다.

밥퍼와 다일공동체에서 봉사자 230여명, 하나금융그룹에서 70명 등 자원봉사자 300여명이 도시락과 먹을거리 등 이웃들에게 전달할 선물을 쌓아놓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김학용 다일공동체 사무총장은 "성탄은 아기 예수님이 구유에서 태어나신,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날"이라며 "28년 전 교회에서 쫓겨난 노숙인 3명과 함께 예배드린 것이 거리 예배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행사에 참석한 노숙인 김양계(75·여)씨는 "자리가 없을까봐 새벽 5시에 왔다"며 "매년 예배에 참석했다. 기대를 많이 하고 왔다"고 말했다.

참석한 노숙인들은 최일도 목사의 "하늘에서 영광, 땅에서 평화, 밥이 답이다"라는 말을 따라하며 예배에 집중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밝은 모습으로 노숙인들에게 인사하고 성탄 선물을 건넸다.

남자친구와 함께 자원봉사를 나온 김모(29·여)씨는 "평소에는 일하느라 시간이 없는데 성탄절을 맞아 처음 거리예배에 왔다"면서 "봉사활동으로 더욱 특별하고 기분 좋은 성탄절이 됐다. 다들 준비한 선물을 가져가서 잘 쓰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