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법관들이 대법 전원합의체 판결에 반하는 결정을 내놓은 헌법재판소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고 정운호 게이트가 법조 비리로 퍼지지 않게 대책을 마련했다는 증언을 내놓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27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 박병대 전 대법관의 공판기일에서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상대로 증인신문을 진행했다.

이날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으로부터 회사의 정리해고 방침에 항의해 특근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전원합의체에서 업무방해죄로 벌금형이 확정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헌법소원을 검토하는 헌법재판소에 대해 보고받았을 때 격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느냐고 물었다.

이 전 상임위원은 "대법원장께서 불쾌해 하셨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며 "5~6월께 대법원이 위치한 교대역에 헌법재판소 광고판이 설치됐다는 사실을 양 전 대법원장에 보고했다. 당시 법원행정처 회의에서도 안국역에 헌재에 대한 비난 광고를 게시해야 하는거 아니냐며 우스개 소리를 한 것이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이 전 상임위원의 2015년 7월13일자 업무일지를 제시했다. 해당 일지에는 '대법원 지시사항. 헌법재판소에 우리도 적극적 대처 필요. 합리적 수단이 아닌 비상적·극단적 대처방안. 시간 얼마 안 남음'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 대법원장을 의미하는 한자 '大' 가 쓰여있었다.

당시 헌재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과 반대로, 이 사건을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내용의 한정위헌 결정을 내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이와함께 고 전 대법관 등이 정운호 게이트 사건과 관련해 언론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대응방안을 마련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검찰은 이 전 상임위원이 지난 2016년 5월11일 작성한 업무일지 중 '실장회의 처장, 부절절한 수임구조, 변호사 윤리문제, 전관과 변호사 유착 X'라고 쓰인 부분을 제시했다. 이에 이 전 상임위원은 "실장회의에서 나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누군가 얘기한 걸 적은 것 같다"고 답했다.

또 검찰은 "전관 (변호사)과 현직 법관의 결탁 문제로 프레임이 형성되는 것을 차단하고, 본 사안에 대해 언론의 관심이 왜곡된 수임구조 및 변호사의 윤리 문제로 집중될 수 있도록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는 논의가 있었냐"고 물었다. 이에 이 전 실장은 "그렇다"고 했다.

한편 검찰과 양 전 대법원 측은 오후 6시 이후 진행 절차를 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 장 측은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좁은 법정에 있으니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고, 숨쉬기도 힘들다"며 "양 전 대법원장이 최근에 페암수술을 받아 다수의 사람들이 모이는 외부에서 식사를 하기 어려워, 집에서 식사를 하고자 하니 다음 기일에 증인신문을 진행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검찰 측은 "재판부가 지난 기일에도 저녁 식사를 하고 재판을 진행한다고 공지한 바 있는데 왜 그러느냐"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4월1일 공판기일을 재개하고, 이 전 상임위원에 대한 증인신문을 이어갈 예정이다. 재판부는 이 전 상임위원이 핵심 관계자인 만큼 앞으로 4회 이상 불러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