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된 ‘홍콩 인권법안’에 서명하자 중국이 주중 미국 대사를 초지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홍콩 문제를 둘러싼 미·중 양국의 정면 대립이 1단계 합의를 앞둔 무역협상에도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협상 타결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그동안 이 법안 서명을 유보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미국에서 추수감사절 연휴(28일∼12월1일·현지시간)가 시작되기 직전인 27일 전격적으로 서명했다. 이 법안은 인권 탄압에 연루된 중국이나 홍콩 당국 책임자에 비자 발급 거부 등을 포함한 제재를 가하고, 미 국무부가 홍콩의 자치 수준을 평가해 미국이 홍콩에 부여하고 있는 특별 교역관계 지위를 유지할지 결정해 의회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최루탄이나 고무탄 등 시위 진압에 사용되는 물품을 홍콩에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별도 법안에도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나는 중국과 시진핑 주석, 홍콩 시민에 대한 존경을 담아 이 법안에 서명했다”면서 “이 법안은 중국과 홍콩의 지도자·대표자들이 서로의 차이를 평화적으로 극복해 오래도록 평화와 번영을 누리기를 희망하며 제정됐다”고 주장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 여당인 공화당과 관계가 껄끄러워질 것으로 우려했다고 지적했다. 이 법안은 미 상원에서 지난 19일 만장일치로 통과됐고, 20일 하원에서 찬성 417표, 반대 1표로 가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2일까지 홍콩의 민주화운동을 지지하지만 시진핑 주석은 ‘내 친구’라며 이 법안에 서명할지 입장을 밝히지 않았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법안 서명으로 인해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미·중 무역협상과 홍콩 문제를 연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 법안 서명으로 무역협상이 궤도 이탈을 해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보였다.

러위청(樂玉成)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28일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를 불러 “홍콩인권법안은 홍콩과 중국 내정에 대한 엄중한 간섭이며 적나라한 패권 행위”라고 항의했다. 이어 “중국은 미국의 잘못된 조치에 대해 반드시 결연히 반격할 것이며 이로 인한 모든 결과는 미국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이 어떤 반격 조처를 할지와 미·중 무역협상 시한에 미칠 영향 등에 대해 “구체적 반격 조치에 관심을 가져 달라”며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만다”고 강조했다.

또 런궈창(任國强)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은 언제든 당 중앙위원회와 중앙군사위원회 지휘에 따라 홍콩기본법과 주군법(駐軍法)이 부여한 사명을 이행함으로써 국가 주권을 단호히 수호하고, 홍콩의 장기적인 안정을 유지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홍콩 시위대는 도심에서 수천명이 모인 가운데 집회를 열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홍콩 민주화 시위의 주역 조슈아 웡은 이 법안이 “모든 홍콩인을 위한 놀라운 성취”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