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내세운 문재인정부에서 비정규직 근로자 숫자가 급증했다는 건 모순적이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규모보다 정부 재정을 풀어 풀뽑기, 교통안전 등을 하는 초단기 일자리를 만든 규모가 급격히 늘어난 결과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고용의 질 개선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정부로서는 당혹스러운 대목이다.

정부는 통계 조사방식 변경에 따라 그동안 누락돼 있던 비정규직이 대거 포착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전년도 수치와 비교하는 ‘시계열 분석’이 불가능하다고도 강조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정부가 새로 포착했다고 밝힌 비정규직 규모(35만~50만명)를 제외하더라도 1년 전과 비교해 늘어난 비정규직 숫자는 최대 51만명이 넘는다. 이는 2004년 이후 15년 만에 최대치다. 변경된 병행조사와 관련이 없는 시간제 근로자 숫자가 급증한 걸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29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 근로자 748만1000명의 절반가량(379만9000명·중복응답)이 기간제 근로자다. 한정된 근로기간으로 계약한 이들이다. 주로 계약직 근로자들이 해당한다. 이 숫자는 시간제 근로자 315만6000명(42.2%)이나 특수한 근로형태의 비전형 근로자 204만5000명(27.3%)보다 월등히 많다.

통계청이 이번에 바꾼 조사 방식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건 기간제 근로자 숫자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 25년 만에 개정한 종사상 지위분류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숫자가 늘어났다는 게 통계청 설명이다. 그동안 정규직 근로자로 잡히던 근로자 중 35만~50만명이 비정규직으로 재분류됐다는 것이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ILO 기준에 따라 고용 예상기간 등이 추가되면서 과거 조사에서 포착되지 않던 기간제 근로자가 추가로 포착됐다”며 “이와 같은 사유로 올해 부가조사와 전년도 결과는 시계열적으로 단절되며 증감으로 비교하는 것은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 설명대로 비정규직 숫자는 예년보다 큰 폭으로 늘었다. 하지만 조사 방식 변경으로 포착된 숫자를 제외하고 단순 계산하더라도 최소 31만7000명에서 최대 51만7000명이 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지난해 비정규직 노동자 증가(3만6000명)와 비교하면 최소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조사방식 변경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시간제 근로자가 급증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시간제 근로자는 같은 직장에서 동일한 업무를 하는 통상 근로자보다 더 짧은 시간 일하면서 주 36시간 미만 일하는 노동자다. 이런 시간제 근로자가 1년 전(279만9000명)보다 16.5%(44만7000명)나 늘었다.

비정규직 연령대를 보면 60세 이상의 비중이 가장 크다. 193만8000명으로 비정규직 4명 중 1명꼴(25.9%)이다. 이어 50대(21.0%), 20대(18.2%), 40대(18.0%) 등이다.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20대와 60대 비중만 늘었다. 일자리 대부분이 20와 60대 중심의 초단기 일자리로 채워졌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통계청 관계자는 “8월 기준으로 통계를 내다 보니 당월 고용동향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지난 8월 청년층과 고령층의 취업자 수가 크게 늘면서 비정규직 숫자도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산업군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으로, 전체의 13.1%(97만8000명)를 차지했다. 이어 ‘사업시설관리, 사업지원 및 임대 서비스업’ 11.6%(86만6000명), 건설업 11.4%(85만1000명) 순이다.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이 늘어났다는 건 정부의 일자리 예산으로 ‘질 나쁜 일자리’만 양산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일·생활 균형 문화의 확산과 시간제를 선호하는 고령층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확대 등으로 시간제 근로자 증가세가 지속하고 있다”며 “이 밖에도 노인 일자리 사업 등 재정일자리 사업이 확대된 것과 숙박·음식업 및 사회복지 쪽 고용 개선, 서면근로계약서 작성이 확대된 것 등이 비정규직 포착이 늘어난 부분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