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DMZ)에 이어 민간인 출입통제선(민통선) 내부에서 발견된 야생멧돼지 폐사체에서 잇따라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가 검출되면서 방역 당국이 뒤늦게 멧돼지 포획 강화 조치에 나섰다. 지난 7월부터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멧돼지 폐사체가 급증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정부의 오판이 멧돼지를 통한 ASF 전파를 방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립환경과학원(과학원)은 12일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진현리 민통선 내 군부대에서 신고한 멧돼지 폐사체 2구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다고 13일 밝혔다. 과학원 현장대응팀은 12일 오전 7시30분쯤 민통선 내에서 멧돼지 폐사체를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 오전 8시에 현장으로 출동했다. 1시간 뒤에는 이 폐사체 주변에서 또 다른 멧돼지 폐사체가 발견됐다. 두 폐사체 모두 ASF에 감염됐다. 근처에서 함께 발견된 다른 멧돼지 폐사체 1구는 지뢰지대 안이라 사체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철원군과 경기 연천군에서 11일 발견된 멧돼지 2구에서도 ASF 바이러스 양성 반응이 나왔다. 둘 다 민통선 안쪽에 있던 개체였다. 강원도 첫 감염 사례이자 DMZ 이남 민통선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된 것도 처음이었다. 이로써 ASF 바이러스가 검출된 야생멧돼지는 총 5마리로 늘었다.

의심스러운 멧돼지 폐사체 증가는 지난 7월부터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이 과학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야생멧돼지 진단결과’ 등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17건이던 멧돼지 폐사체는 지난 7월 26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전국에서 멧돼지 폐사체 4건이 발견된 것에 비하면 이례적인 수치이다. 이후 폐사체는 8월 9건으로 주춤하다가 9월 23건, 10월(1∼6일) 23건으로 늘었다. 올해 발견된 폐사체 98건 중 65.3%(64건)가 경기·강원에 분포했고 대부분이 휴전선 접경지역의 시·군에서 발견됐다.

북한 접경지역에서 연이어 ASF 감염 멧돼지가 발견되면서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는지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지난 2일 DMZ 안에서 첫 야생멧돼지 감염 폐사체가 발견되자 이틀 뒤 보도자료를 내고 ‘북한 야생멧돼지가 이중 삼중으로 되어 있는 우리 GOP(일반전초) 철책을 넘어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할 것으로 보이나, 열상감시장비 등을 이용해 이동 여부를 철저히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물론 야생멧돼지가 아닌 다른 동물이 바이러스를 매개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환경부는 얼마 전까지도 ‘전세계적으로 멧돼지 이외의 동물에 의한 전파는 물렁진드기에 의한 전파밖에 없다’며 그 가능성을 낮게 봤다가 이달 초 야생멧돼지 감염 사례가 나오고서야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하겠다’고 입장 변화를 보였다.

서정향 건국대 교수(수의학)는 “멧돼지는 무리 지어 다니기 때문에 폐사체가 발견됐다면 속했던 무리 전체가 감염됐다고 봐야 할 것”이라며 “멧돼지를 최대한 다수 포획해서 ASF 전파 경로를 확인한 후 철저한 멧돼지 개체수 조절에 들어가야 한다. ASF를 근절한 나라와 그러지 못한 나라는 멧돼지를 얼마나 잘 통제하는가에 달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