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부가 ‘범죄인 인도법안’ 추진을 보류키로 했다. ‘100만 시위’로 표출된 홍콩 시민의 저항에 결국 ‘백기’를 든 셈이다.

시위대 측은 법안이 철회될 때까지 시위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반면 중국 정부는 법안 보류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홍콩 정부가 법안 추진 동력을 되살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범죄인 인도법안은 자연스럽게 소멸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홍콩 반환 이래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둘러싼 중국과 홍콩 간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16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행정 수반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지난 15일 오후 3시 긴급 기자회견에서 법안 추진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법안 추진 강행으로 발생한 혼란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았다.

람 장관은 이어 “정부는 이견을 좁히기 위해 노력했으나, 더 많이 소통하고 더 많이 설명하고 더 많이 들어야 할 것”이라며 “나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겸허하게 비판을 듣고 수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담화를 통해 “홍콩 정부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겅 대변인은 “중국 중앙정부는 홍콩 특별행정구에 대한 지지와 존중, 이해를 표명한다”며 “홍콩 반환 이래 일국양제와 고도의 자치로 홍콩 주민은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위대 측은 홍콩 정부의 이런 결정에도 16일 예정된 집회는 계속하기로 했다. 이는 홍콩 정부가 일단 법안을 보류했지만, 재추진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를 경계하는 차원에서다. 다만 17일 예고한 파업은 철회키로 하는 등 홍콩 사태는 봉합 국면으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지난 9일 100만 시위에 이어 12일 수만명 도심 집회에도 홍콩 정부가 법안 추진 강행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위기 상황으로 치달았지만 홍콩 정부의 보류 결정으로 사태는 급반전됐다.

이번 사태가 봉합 수순에 들어간 데에는 여러 정치적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홍콩 시민의 대규모 저항과 사태 장기화가 홍콩 정부의 결정을 압박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중국 정부로서는 일본 오사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담판이 예정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부담을 가급적 줄이려는 판단도 깔렸던 것으로 해석된다. 홍콩 사태를 계기로 미국과 또 하나의 전선이 만들어진다면 시 주석으로서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로 빈과일보 등 홍콩 현지언론은 한정(韓正)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홍콩과 인접한 선전(深?)에 직접 내려와 대책 회의를 하고,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 법안 연기를 지시했다는 소문을 전하기도 했다. 이는 이번 홍콩 정부의 법안 보류 결정에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깊숙이 개입하고 있을 것이라는 정황을 뒷받침하고 있다.

범죄인 인도법안은 사실상 소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 입법회 의원 임기가 내년 7월 끝나기 때문에 이 기간 내 법안이 재추진되지 않으면 법안은 자연스럽게 소멸한다.